22 “나보고 이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라고? 걔가 잘도 체육관으로 가져다주겠다.” 쯧. 혀를 차며 환멸의 눈초리로 나를 흘기는 정호석에 하소연하듯 답했다. “그럼 어떡해. 내가 찾아가면 벌써 피하고 없는데. 이렇다 할 다른 방법이 없잖아.” 찌질한 수법이긴 하지만 여기에 내 사활을 걸어보겠다며 오른손에 잡은 검정 손목 보호대에 꽉 힘을 주었다. “너만...
20 도망치다 흘러 들어간 캠퍼스 내 공원은 나를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들게 만들었다. 공원 곳곳에 심겨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보자 재작년 식목일에 정국이와 함께 심었던 나무가 떠올랐던 것이다. 그때의 그 청주 숲에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있을 즈음, 체육관을 나설 때부터 치마 주머니 속에서 쉴 새 없이 울리던 진동 소리가 나를 다시 현실로...
19 정국이의 대회 당일날은 이른 아침부터 전쟁이 따로 없었다. 아침 6시 기상 후, 어제 밤늦게까지 찾아보던 레시피를 식탁 위에 쫙 펼쳐놓고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. 다른 선수들이랑 나눠 먹을 지도 모르니까 좀 넉넉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. 잔뜩 집중한 채로 재료를 손질하는 나를 옆에서 살쾡이처럼 감시하던 김남준은 내가 김밥 한 줄을 완성해서 도마 위에 ...
16 골목길을 따라 나란히 걷고 있는 정국이와 나. 이따금 느껴지는 그의 시선에 차마 돌아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정면만 뚫어지게 응시했다. 마음이 몽글몽글한 것이 좀 전에 먹은 아이스크림이 얹혔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, 정국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. “있잖아.” “응.” “내가 박지민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한 거···,” “···.” “신경 쓰지 ...
15 “저 친구는 어째 볼 때마다 저리 분주해?” 기말고사가 끝났다. 이른 시간부터 동아리실에 (aka 과학실) 모인 부원들 사이에서 심각한 얼굴로 가채점 삼매경에 빠진 박지민을 보며 석진 선배가 한탄의 말을 흘렸다. 곧바로 내게 시선을 돌리는 선배에 난 양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. "만만치 않은 1학년들이야. 우리 1학년 때보다 눈에 독기가 빡세...
14 다음날 학교가 끝난 후, 정신없이 연습에만 매달렸다. 기진맥진한 상태로 매트 위에 몸을 던졌을 땐 이미 모든 부원들이 체육관을 빠져나간 후였다. 그로부터 한 시간가량을 더 기다렸지만 여주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. 그날을 기점으로 여주가 의도적으로 날 피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. 날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정말 나와는 한순간도 함께 있고 싶지 ...
13 “아주 푹 빠졌구만.” “······ 어?” “김여주 좋아하냐? 수업 시간 내내 아주 대놓고 쳐다보던데. 다 들키겠다. 다 들키겠어.” 영어 이동 수업이 끝난 후 본 교실로 돌아가는 길. 정호석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타박을 준다. “··· 뭐래냐. 칠판 본 건데.” “···.” “···.” “···.” “··· 티 나?” “티 나? 티 나? 허이...
11 그러니까 그날은 여느 주말과 다를 것 없이 시작되었다.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거진 3개월이 지나 벌써 5월 중순에 접어드는 시기. 지지난 주에 끝난 중간고사의 여파로 학교는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. 그동안 난 과학 동아리 선배들이 떠넘기는 임무 수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, 박지민과 함께하는 동물 보호소 봉사활동도 이제 거진 3개...
♬ 배치 고사에서 한 문제가 나갔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. 하지만 확신했다. 일등은 당연히 나일 거라고. 이제껏 단 한 번도 꼭대기를 놓친 적 없었으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테지. 만약 만점자가 있다면? 상관없다. 일등 따위, 다음에 다시 탈환하면 되니까. 너무 쉽게 가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다.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통지서와 이런저런 학교 정보가 들어있...
9 귀찮아질 거라던 녀석의 선전포고는 빈말이 아니었다. 처음 만난 날 이후로 박지민은 집요하게, 어떻게 보면 상당히 귀여운 방법으로 날 괴롭혔다. “어? 여주다아- 여기서 만나네?”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순박한 웃음을 짓는 박지민에 코웃음을 쳤다. 당장이라도 “흥, 웃기시네! 나 있는 거 알고 온 거잖아!”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건 뭐. 누가 들으면 도끼...
7 “어, 왔어? 손 닦고 와서 이것 좀 갖다 놔라.” 현관으로 들어서자 오랜만에 복작거리는 신발장이 보인다. 나와 다섯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집 안에 들어온 정국이는 고기 봉지를 들고 곧장 마루로 향했다. 큰 창이 난 베란다 옆 마루에 놓여 있는 커다란 피크닉 테이블. 이미 쌈거리를 준비해 놓으신 엄마들과 가스버너를 준비하시는 아빠들. 굉장히 오랜 기간...
☆ 여주가 가장 약한 과목은 체육. 본인은 키가 너무 작다며 체육 하기 좋지 않은 조건을 타고났다 주장. ☆ 여주는 사실 빠른임. 1월 9일생. 정국이와 운명이라며 깨알같이 좋아함. ★ 정국이는 외동. 여주와 친구가 되기 전에는 투니버스, 카툰네트워크, 행복한 상상 주니어네이버에 푹 빠져 있었음. ★ 정국이는 가히 완벽에 가까운 여주의 내신 및 모의고사 성...
별 헤는 밤 복사나무 꽃 아래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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