역전재판

수련회 이후 짝사랑을 접었더라면 (상)

띵-동- 띵-동- “여주야, 누군지 좀 봐! 엄마 지금 못 나가!” 아이참, 지금 중요한 장면인데. 엄마는 항상 귀신같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나한테 임무를 준다니깐. 빛의 속도로 리모컨을 들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데 고새를 못 참고 다시 들려오는 벨 소리. 띵-동- “나가요 나가!” 소파 팔걸이 위에 올라서서 현관 카메라를 보니 아무것도··· 아니, 잠...

집들이 · 겨울 여행 II

크리스마스 대작전

고등학교 졸업식 • 겨울 여행 I

Epilogue: 품 안의 봄

39 “어제 수능 치른 사람 치고 넌 어째 긴장감이 하나도 없어 보이냐.” “애초에 그냥 수많은 시험들 중 하나일 뿐인데 뭐. 그 자체로는 나한테 별 의미 없어. 이번에야말로 김여주 코를 납작하게 눌러 줄 거라는 게 중요한 거지.” “아, 박지민 쟤 또 시작이야.” “놔둬. 저 녀석 저러는 거 1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어.” 수능도 끝났겠다, 학교에서 한가한...

Epilogue: 아주 오래된 마음

37 새 학기의 어느 봄날이었다. 2학년에 올라온 후, 학교에서 여주와 마주치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. 수업 시간은 고사하고 쉬는 시간에 우연히 마주치기도 힘들어진 탓에 난 학교생활에 꽤나 싫증을 내고 있었다. 그녀와 함께하는 하굣길이 하루 중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.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이 없는 여주가 학교를 마친 후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...

15%의 가능성

35 복도 끝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. 자주 신지 않는 연분홍색 플랫 슈즈는 발뒤꿈치를 감싸지 못하고 벗겨질 것처럼 덜렁거렸다. 한달음에 도착한 1층 복도는 사람 한명 없이 고요했다. 전부 중앙현관 쪽에 몰려있는 건가. 가쁘던 호흡이 제 속도를 찾자, 현실적인 걱정이 밀려들었다.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. 옷은 어떻게 해야 하지. 게다가 애들한테 한마디 ...

익숙해진다는 건

33 열두 시가 되자 나와 나연이가 속한 차 끓이기 팀은 10분의 자유시간 후 홍보 팀과 교대했다. “우리는 저-어기 신관 쪽으로 갈게. 이따 반에서 만나!” 일의 효율성을 위해 두 명씩 짝을 지어 구역을 정했다. 다른 애들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나연이는 한복 치마를 종아리께까지 끌어올리며 옆에 있던 벤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. “아이씨, 겁나 거추장스럽잖...

내겐 너무 소중한 어떤 것

31 “학생, 길 좀 다시 물을게.” 인적 없는 어두운 골목길. 꺼졌다 켜졌다, 불규칙하게 점멸하는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안 그래도 섬뜩한 밤길을 더욱더 기이하게 만들었다. 공포심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저런 수상한 질문에 멈춰서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. 본능이 말했다. 도망쳐야 한다. 최대한 빨리, 가능한 한 멀리. 잔뜩 긴장한 몸을 이끌고 오르막...

다시 찾아온 가을

28 “여주는 이것 좀 트렁크에 실어줄래?” “아, 네. 이리 주세요.” “차 키만 석진이 편에 보내줘. 선생님이 못 태워 줘서 어쩌지.” “걱정 마세요! 저희 둘이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.” “그래, 그럼. 둘 다 수고했다. 다음 주에 학교에서 보자.” “네, 학교에서 뵐게요.” 설명하랴 질문에 답하랴 정신없이 지나간 학회에서의 하루...

첫 열일곱, 마지막 열일곱

26 “정국이가 집중 못 하는 것 같으니까 여기까지 하자.”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치는 시선. 흠칫 놀라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정국이가 귀여워 싱긋 미소를 지었다. 정국이가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 치곤 본인 또한 상당히 따분해 보이는 민윤기. “오늘이 마지막이네요.” 내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한 민윤기가 우리 셋을 쭉 둘러보았다. “이거...

숨 쉬듯이 자연스럽게

24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지만 역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는 오싹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. 평소 같으면 귀찮을 정도로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을 박지민이 뚱한 얼굴로 앉아있으니 그건 또 그것대로 신경이 쓰여 한숨을 내쉬었다. “너 계속 그럴 거야?” “ ···.” *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 정국이...